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빅토리아 여왕 (문단 편집) ==== 과부 여왕 ==== [[파일:294877-1340799528.jpg|width=500]] 앨버트 공의 초상화와 함께한 여왕. 차녀 [[영국의 앨리스|앨리스 공주]], 4녀 루이즈 공주와 함께. 1861년 [[12월 14일]] 여왕의 부군 앨버트 공이 4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병상에 누워 죽어가는 동안에도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날 거라며 애써 현실을 외면하던 여왕은 남편의 죽음으로 받은 충격이 너무나 큰 나머지 앨버트 공의 사후 모든 국정에서 손을 떼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어린 자녀들과 함께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춘 채 윈저 성에 은거해버렸다. 정신병을 앓았던 [[조지 3세]]는 왕세자를 섭정으로 임명한 후 공무에서 물러났지만, 섭정도 두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은거해버린 여왕의 무책임한 행동[* 다 같은 궁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버킹엄 궁전]]은 국왕의 공식 거주지이자 업무 공간이고, [[윈저 성]]은 왕실의 비공식 거주지이다.]에 내각과 의회는 매우 당황했다. 명목상 군주이긴 해도 국가 대사를 처결할 때는 여왕의 의견을 묻지 않을 수 없었기에 총리는 하는 수 없이 [[런던]]에서 멀리 떨어진 여왕의 처소로 매번 찾아가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빅토리아를 동정하던 국민들도 여왕의 부재가 길어지자 일각에서는 거액의 생활비를 지급받고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면서 국정에는 소홀한 여왕의 행태에 염증을 느껴 '윈저의 과부는 물러가라'며 퇴위를 주장하는 등 불만의 여론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여왕은 떠밀리듯이 공무에 복귀했으나 앨버트 공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언제나 검은 [[상복]]만 입고 지내는 등 우울한 감정을 숨기려 하지 않았고, 상복을 입을 때 머리에 얹는 베일을 착용하기 불편하다며 제국왕관(Imperial State Crown)[* 맨 위의 대관식 초상화에서 쓰고 있는 것.]을 쓰는 것도 거부했다. 그러자 이러한 모습이 국가의 위신과 왕실의 체면에 손상이 갈 거라고 판단한 영국 정부는, 여왕을 위해 특별히 제국 왕관의 축소판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파일:Queen Victoria Small Diamond Crown.jpg|width=500]] [[은]]으로 골조를 만들고 다채로운 보석이 사용되지 않아 겉보기에는 --어디까지나 기존 왕관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소박한 직경 9cm, 높이 10cm의 작은 왕관에는 오로지 '''[[다이아몬드]]만 1,187개'''가 사용되었다. 이 왕관은 1871년 [[2월 9일]] 의회 개원식 때 처음 착용한 뒤로 쭉 애용했고 공식 초상사진을 촬영할 때도 항상 이 왕관을 썼으며 사후 장례식 때 여왕의 관 위에도 올려졌다. 여왕 사후 [[에드워드 7세]]의 아내 [[덴마크의 알렉산드라|알렉산드라 왕비]]가 한때 착용하기도 했으나 그 후로는 왕실 보석으로 사용되지 않았고 현재는 [[런던 탑]]에 보관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